削山塡峽 삭산전협 - 산을 깎아 골짜기를 메운다.
이런 사자성어가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있다면 알려주세요.^^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Every valley shall be raised up, every mountain and hill made low; the rough ground shall become level, the rugged places a plain. _ 이사야 40:4 |
외치는 자의 소리에게 명하신 일은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고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골짜기를 돋우어 산과 언덕을 낮추어 고르게 하실 것이고 평탄하게 하실 것이라고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C텐트케이커 선교회를 시작하게 되면서 거의 날마다 떠올리며 상기하는 말씀 중 하나입니다.
어딘가가 언덕이라면 어딘가는 골짜기가 있을 것입니다.
언덕이 더욱 높아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언덕이 낮추어져 골짜기가 메워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습니다.
언덕으로...? 골짜기로..?
나라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언덕을 더욱 높이 쌓아 올리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의 나는 자원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자원이 제한된 내 안에서 언덕을 높이 쌓아 올린다는 행위는
결국 골짜기를 더 파내어 올린다는 필연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언덕을 쌓으면 쌓을수록 골짜기는 깊어집니다. 이것이 자연현상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한 몸으로 보면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어딘가에 더욱 언덕을 쌓으려는 노력이 있다면 어딘가엔 골짜기가 깊어집니다.
하나님의 일은 언덕을 향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골짜기로 내려 가는 것이 아닐까요?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모여 단합하여 나아가는 방향이 언덕인지 골짜기인지 들여다 본다면 어떨까요?
하나의 액션 안엔 이 두가지 방향이 항상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한 가상의 크리스천 배우를 떠올려 봤습니다.
그에겐 비전이라 부르는 꿈이 있습니다. 대학로 연극계에서 크리스천으로서 영향력 있는 배우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의 목표입니다.
그에게 대학로 연극계가 올라야 할 언덕인가요? 내려가야 할 골짜기인가요?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겠다고 말하는 학생에게도 물어본다면?
그가 가려는 좋은 직장이 올라야 할 언덕인가요? 내려가야 할 골짜기인가요?
깊이 들여다봐야 알겠죠..
이분법적으로 질문하는 것을 양해해 주세요.
문화예술사역의 영역안에서도 이 질문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이 방향이 언덕을 향한 것인지 골짜기를 향한 것인지..
문화사역이 이미 갖추어진 중대형 교회의 화려한 옷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그래서 높은 퀄리티를 요구하는 정상에 설 때에라야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산이 된 것은 아닌지
대중문화가 이미 높은 산이 되어져 있는데 또 하나의 산을 쌓는 것은 아닐런지..
저에겐 그 골짜기를 선교의 현장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국내외 선교의 현장에서 문화예술사역이 일회성의 이벤트가 아닌 선교지와의 연합으로 존재가 흘러들어갈 때 그가 가진 산은 훌륭하게 골짜기를 메우게 됩니다.
최고일 필요도 없습니다. 그 골짜기엔 그의 최선이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쌓아 올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메우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쌓아 올리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또 그들이 누군가에게로 메우러 가도록 길을 예비해 주는 것입니다.
... 골짜기로 나아가니 내 골짜기가 메워지더라 ....
그런데 좀 더 알려주신 것은 하나님의 길을 평탄하게 하려 나아가는 것은 나의 선택이지만 실제 나의 무엇이 깎여져 골짜기를 메우게 되는 지는 하나님이 아시고 하나님이 주도하셔서 깎고 메우고를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깎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깎아 주려고 하는 내 주도성은 내 안의 은밀한 산을 또 하나 쌓아 올립니다. 내 의, 내 만족이라는 산입니다.
언덕을 깎아 골짜기를 메우는 사역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오히려 나는 나의 골짜기를 끌어안고 또 다른 골짜기로 가는 것 뿐입니다.
하나님이 깎고 메우시는 일에 순응하는 것이 유일한 소명입니다.
함께 존재함으로 서로를 오래 참고 기다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당신의 때에 내 안의 자원들을 꼭 필요한 골짜기에 쏟아 부으십니다.
때론 열등감으로, 때론 늘 5% 부족하다고 여기던 나의 자원이 누군가의 골짜기로 흘러들어가는 경험은 반대로 나를 살립니다.
왜냐하면 그들로부터 내 골짜기가 메워지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는 사역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로부터 공급받고 채워지는 경험을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아무도 내가 했다. 내가 주었다'라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모두 '받았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 사람의 언덕을 그의 골짜기로 내어 주고 그의 언덕을 이 사람의 골짜기로 내어 주는 평탄게 하시는 사역을 경이로운 능력으로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여지지 않더라도 그 과정은 꼭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저에게 보여 주신 이상입니다.
누군가는 이상적이라고 얘기하시겠지만 저에겐 방향입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문화사역의 담론들이 더 단합하여 언덕으로 올라가자가 아니라 '어떻게 우리를 흩어서 각자의 골짜기로 가도록 도울 것인가?' 라는 내용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뭐래도 하나님이 보게 하신 골짜기가 있다면 만인이 그곳이 산이라고 해도 그는 그에게만 보이는 골짜기를 향할 것입니다.
저에게 꿈꾸게 하신 텐트메이커는 문화예술의 영역에서 이러한 削山塡峽(삭산전협)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너의 존재와 네가 가진 자원이 이 땅에서 정말 가치 있게 흘러가도록 하고 싶단다. 그들은 네가 꼭 필요하단다. 그리고 너에게 그들이 꼭 필요하단다.'
이런 음성이 가상의 이 공간안에서 서로에게 들려졌으면 좋겠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
In Mongo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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