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씀이 깨달아 믿어지기까지는 내 자신이 죄인이라고 말하지만 진짜 죄인인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죄를 범한다는 건 언제나 오르락 내리락 하는 내 기준에서의 미묘한 해석차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규정된 죄들만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이 대신 해결하셨다 고만 알았었습니다.
때론 누가 봐도 커다란 죄를 짓고 회개하여 주님 앞에 나오는 자들이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 쟤들은 좋겠다. 삶이 다이나믹해서^^;…
뭐 이런 생각도 속으로 했건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3:22,23>
그 날, 비로소 복음을 깨달은 날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다
이 명제는 나에겐 20년이 지난 지금도 충격적입니다.
본질상 죄인으로 출생한 죄인이기 때문에 죄의 열매가 맺히는 건 자연현상입니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누가복음 6:43>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태복음 7:17,18>
한번도 못된 나무인 본질을 발견하지 못한 채 저절로 맺히는 못된 열매를 내 기준에 안 좋아 보이는 것들만 수고하며 따 내는 것을 열심히 믿는다라고 착각하며 살아왔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이런 내 못된 죄의 열매의 형벌을 대신 담당하신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모든 지은 죄의 열매 뿐만 아니라 본질이 ‘죄인’인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에수님을 나의 구원자, 나의 왕, 나의 주인으로 영접할 때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연합되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라실 때 ‘죄인’인 나도 예수님과 연합하여 함께 달려 예수님이 죽으실 때 ‘죄인’인 나도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비로소 못된 나무인 죄인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삼일 후 부활하실 때 죄인은 죽고 ‘의롭다’함을 얻은 새 것으로 나도 예수님과 연합되어 부활하였습니다.
죽었다가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났습니다. 거듭났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죽었다가 살리신 것 뿐만 아니라 사랑의 하나됨을 가능케 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연합,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있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연합을 하신 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일이 벌어졌는지 도무지 측량이 안 됩니다.
그래서 어쩌면 오늘도 그 연합의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만큼만 누리는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 할 수 만 있다면 구원 받은 자가 그 감격을 누리지 못하도록 이 세상의 염려로 덮어 버리려는 원수들을 깨뜨리고,
믿음을 선물로 받아 더 깊은 믿음으로 더 깊은 누림과 사귐으로 들어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요한일서 1:3>
Dive to Him 2006.4.28 Photo by Agul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