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by tentmaker posted Apr 0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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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이사야 66:2>

 

Has not my hand made all these things, and so they came into being?" declares the LORD. "This is the one I esteem: he who is humble and contrite in spirit, and trembles at my word.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아 그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르시되 너희 형제가 너희를 미워하며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쫓아내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영광을 나타내사 너희 기쁨을 우리에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라 하였으나 그들은 수치를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사야 66:5>

 

Hear the word of the LORD, you who tremble at his word: "Your brothers who hate you, and exclude you because of my name, have said, 'Let the LORD be glorified, that we may see your joy!' Yet they will be put to sh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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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 Photo by Sakinai in Uzbekistan, 2010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이런 자를 하나님이 소중하게 대하십니다.

esteem : (대단히)존경하다. 중히 여겨주시고 높여 주신다는 단어적 의미에 국한되지 않겠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얼마나 소중히 대하시는 지 전해집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것이 예배의 본질에 가깝다고 나는 믿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인데 그 때에 하나님의 존전에 선 나는 옛자아의 부패한 더러움을 더욱 세밀하게 보게 되고 그런 나와 연합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연합하여 죄인인 내가 십자가에서 죽고 의롭게 된 사실이 끊임없이 나의 삶에서 드러날 때 나는 옛자아의 결박을 풀어주시는 현재의 주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배를 어찌 다 안다고 정의하겠습니까?

다만 하나님의 존전에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 (he who is humble and contrite in spirit, and trembles at my word)을 가리우는 어떤 예배 행위는 거짓에 속하며 더 나아가선 참을 대체하는 중독에 해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된 것을 직면할 때 그것을 회피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옛자아입니다.

그럴때 무언가가 그 참된 것에 대한 고통스러운 직면을 가리워주며 비슷한 종교적 체험을 줄수 있다면 강력한 마취의 역할을 합니다.

마취는 치료를 위한 수술에 필요한 것입니다.

수술없이 마취상태만을 계속 이어간다면 그것은 필연 중독으로 이어집니다.

 

최근에 자주 듣는 가장 아픈 단어는 '중독'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지 않으려 하여 대체하는 모든 것이 중독입니다. 더 엄밀하게 얘기하면 하나님 당신으로만 채워져야 할 본질의 자리에 대체하는 모든 것이 중독입니다.

 

예배중독,종교중독,사역중독,관계중독.. 끝이 없습니다.

 

저는 종교중독자이면서 사역중독자의 흔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의 삶을 가장 강력하게 만족시켜 준 것이 이 두가지였습니다.

그렇지 않고선 이 두려운 세상에서 살아가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기엔 또 다른 큰 두려움이 지배했었습니다.

종교와 사역의 실체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두려움이엇습니다.

그래서 끝없이 스스로를 마취시켜야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그런 두려움이 수면위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위장과 가면,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너무 자연스러워 져서 자신이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 조차 희미해집니다. 자신에 대한 거짓 확신이 나를 지배합니다. 중독이 된 것입니다.

 

이 견고한 진을 깨뜨린 놀라운 은혜가 십자가 복음이었습니다.

십자가 복음 앞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저항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내가 주님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봉사하며 사역하며 살았냐고!! 주님이 내 안에 계시지 않는 것을 시인하는 것은 유일하게 나를 지탱하고 있던 삶을 송두리채 흔드는 것이었고 그 이후의 벌거벗은 나의 상태가 너무나 공포스러워 마지막까지 부인하며 가면을 꽉 부여 잡았었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일 5:12>

 

이 말씀에 모든 견고한 진이 무너졋습니다.

난 적당히 고치고 덮어서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본질적인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로부터는 죄의 열매만 맺히는 것을 알았고 어떤 선한 행위도 누더기와 같은 의, 곧 죄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나의 죄의 열매의 댓가를 대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지불하셨다고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죄의 열매정도가 아니었습니다.본질상 죄인인 내가 주님과 연합하여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본질상 죄인인 나도 예수님과 함께 죽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죽은 십자가를 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나도 그 주님과 연합되어 의로운 생명으로 부활했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0>

 

1992년 양평의 한 작은 수양관에서 그렇게 복음을 깨닫고 드디어 한 발자욱을 내 딛엇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은 그 중독의 뿌리를 뽑아내는 삶이었다고 일편 정리해도 될만큼 중독의 뿌리는 깊었습니다.지금도 그 과정가운데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얼굴을 향하여 서는 삶의 예배의 자리는 자유함의 경험이전에 늘 두렵고 떨리는 자리입니다. 나의 실체를 직면하는 아픔,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치유와 자유함의 경험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마취된 몽롱함은 결코 그 치료의 환희와 비교하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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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액츠뮤지컬 선교단 십자가캠프 위탁훈련 중에 - 사진 출처 : 한국제자훈련원 www.jeja.org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5:21-24>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이사야1:11-18>

 

<2010,6,18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