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 마 20:30~34
예수님은 맹인의 원함을 몰라서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을까요?
지난 주 주일 청년부 예배 중에 목사님이 조명해 주신 부분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폐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주민이 있다 하리니
너희 사방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은 줄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 에스겔 36:35-36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황폐케 되어져 포로생활을 하게 될 것을 예언 후 다시 회복하게 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 에스겔 36:37
하나님은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되어질 것을 구하여야 주시겠다고 합니다.
비슷한 질문이 생깁니다. 왜 회복해 주시기로 하셨으면 굳이 이스라엘의 기도를 듣고서야 하시겠다는지..
구하면 해 주고 구하지 않으면 해 주시지 않으시는 건지..
하나님은 관계를 원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자녀가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어 주시는 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원하신다는 믿음입니다.
맹인들이 주께 구할 때 예수님이 맹인 두 사람에게 무엇을 원하냐고 질문하신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이스라엘이 구하여야 할지라.’
두 맹인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31)’라고 주님께 외칩니다.
이에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십니다.(34)’ 예수님이 특별히 그들만을 불쌍히 여기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본체이시고 그 사랑은 곧 긍휼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두 맹인의 고백을 받으시고 그 고백을 통로로 주님의 긍휼을 내 보이십니다.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32) 라고 물으시고 그들이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33)’ 하고 고할 때 그들의 눈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마 7:7 라고 구하면 되는 것인가?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 약 4:3
바르게 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는 모르겠지만 한가지는 알 것 같습니다.
그 한 가지는 구원과 회복입니다. 이스라엘은 구원받아야 할 상태이며 회복해야 할 상태입니다.
맹인들도 보지 못하는 장애로부터 구원받고 회복되어야 할 상태입니다.
암에 걸려 한 달밖에 살 지 못하는 사람이 그 사실을 망각한 채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식을 구한다면
사람을 사랑하는 데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타인과의 건강한 관계를 원한다면 무엇이 먼저일까요?
영생을 구하러 예수께 나온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이 모든 소유를 팔아 나누고 나를 따르라 라고 하시지 않았던가요?
그는 영생을 얻기 이전에 자신이 생명을 잃어버린 죄인이라는 사실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죄에 의해 지배된 구원 받아야 할 존재를 봐야 했습니다.
구원받아야 할, 회복되어야 할 자신의 존재를 보게 된다면 비로소 주님이 기다리셨던 요청을 하게 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 롬 10:10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제 이 질문은 나에게 와 있습니다.
이전에 이 질문을 들었더라면 정말 난감했을 겁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무엇을 얘기해야 할 지..
사실 정말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 몰랐습니다.
부모님 구원, 장래에 대한 답, 건강, 현재 풀어야 할 과제들.. 이런 것들을 구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원함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구원과 회복에 대한 갈망이 생겨버렸습니다.
주님이 구원받아야 할, 회복되어야 존재를 보여 주셨기 떄문입니다.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저는 이 질문 앞에 오늘 이렇게 외칩니다.
주님 저의 육신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이 있습니다. 전엔 아픔이 느껴지지도, 알지도 못했었는데 이젠 이 돌같은 마음 때문에 아픕니다.
주님!! 돌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세요!!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 에스겔 36:26-27
주님이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정말 간절히 구해야 할 제목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너무 간절해져서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