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 코끼리 만지기

by tentmaker posted Nov 0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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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시간을 자신을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었다.
그런데 최근에 드는 생각이지만 어느 순간 아웃사이더의 시각에서 인사이더를 아웃사이더로 소외시키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왜 그런 말도 있잖은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왕따시킬 수도 있다고..
 
긴 시간을 한 공동체가 형성되고 위기를 겪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 안에서 겪고 지켜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리면서
생각하고 배우게 된 것들이 있다.
 
곰곰 생각해보면 절대적인 주류와 비주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을 주류라고 하는 이도 우리고 비주류라고 하는 이도 우리가 아니던가?
 
예수님은 오직 하나의 교회를 이 땅에 세우셨고 모든 교회는 그 안에서 연락하여(연합하여) 지어져 가는데 
어느 누구라도 자신을 분리시켜 생각한다면 그건 마치 결혼한 부부가 같이 살면서 각 방으로 들어가 문닫고 만나지 않는 것과 같지 않을까? 
 
결혼생활의 아주 고약한 형태 두가지를 꼽자면
'네가 틀렸어. 네가 바뀌어야 해!!'라는 것과
'나는 나대로 살래. 누가 뭐라 해도 내 식대로 살래 너는 너대로 살아.(너나 잘하세요~)'
이 두가지라고 생각한다. 이 둘중 어느 하나라도 쥐고 있다면 다시 생각하시길...
 
그 다른 두사람이 각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치열하게 서로의 다름을 부딪혀 자신의 심각한 편향과 기만을 깨뜨려 가는 것이 부부생활의 큰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부부가 모든 것을 동의해야 한다는 전제는 없다. 다만 동의하지 않아도 이해는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해한다는 것은 곧 동의한다고 생각하기에 이해하기를 거절하는 것 같다.
 
내가 주류라 생각한다면 비주류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비주류라고 생각한다면 주류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신세대라면 기성세대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기성세대는 신세대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 나로부터 조금 더 안전하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내가 그어 놓은 공간적, 정치적 또는 심리적 금들을 지워야 한다.
항상 내가 전체가 아닌 부분으로 존재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 편만한 하나님의 셀 수 없는 전체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원수는 할 수만 있다면 부분을 전체와 분리시키려 한다.
무서운 것은 부분이 전체와 분리되어 강화되면 그 안에선 언제나 전체를 향한 폭력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런 부분이 영적이 이슈일 땐 더욱 강력한 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이 오랜시간에 걸쳐 강화되어 진행되기 때문에 내부의 당사자들은 잘 감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 그런 폭력은 '우린 옳을 일을 하고 있다'라는 깃발 아래에서 자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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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사울을 피해 유다 땅 헤렛 수풀에 숨어있으면서 블레셋이 그일라를 친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하니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한지라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서 죽이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 오니라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니라
(삼상 23:1-5)
 
다윗은 하나님께 물어 응답을 들었다.
그런데 같이 있던 사람들이 펄쩍 뛴다. 
'지금 여기에 숨어 있는 것도 무서워 죽겠는데 나가서 블레셋과 싸우자구요? 어떻게 된신 거아니예요?!!!'
....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흰 하나님의 말씀을 못 믿는거냐?!! 잔말 말고 싸우러 나가자!!!'
다윗은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다시 똑같이 물었다.
하나님이 '이 녀석!!! 왜 똑같은 말을 두번 하게 하느냐!!!!'라고 혼내시지 않으셨다.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
 
오늘은 이 이야기에서 다윗과 동료들과의 소통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다윗은 동료들의 의견에 동의하진 않았지만 그 마음들을 이해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을 이해함으로 그 마음까지 가지고 하나님께 다시 나아간 것이 아닐까?
하나님도 다윗과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친절히 더 자세하게 말씀해 주신다.
 
부분으로서 존재함을 순간 순간 인정하고 나와 다른 전체의 부분을 이해하려는 과정을 포기하지 말자.
 
동의는 되지 않을 지언정 이해할 때 까지 들어야 한다.
 
 
 
맹인모상.jpg

<장님 코끼리 만지기>

 
이미지 주소 http://blog.naver.com/nxr/80003064591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