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내기

8월 북불은 30도가 넘는 더위가 있다가도 비가 오면 10도 이상 떨어져 아침 기온이  8도인 덥고 춥고 하는 날씨가 반복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는 여름 휴가철이어서 성도가 10명도채 안되게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저희 부부도 그간에 분주하게 있었던 전도 행사들이 끝난후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새로운 9월을 맞이하기 위해 휴식과 기도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야 안 사실인데 프랑스에서는 성직자가 직업군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모른체 얼마전까지 저희의 신분을 선교사와 목사로 바꾸고 그에 따른 후원관리도 현지화하려고 준비했는데, 결국 프랑스에서는 목사나 선교사는 사회에서 인정하는 직업군이 아니여서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년간 남편이 아닌 아내인 저에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쌩껑땅에서 살아내는 것과 사람들과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일인 (잘 알려지지 않은) 선교사로서 목회자를 돕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이해 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저의 정체성부분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프랑스의 부흥을 약속 받았던 삶을 바꾸었던 멋진 콜링의 순간이 아닌 현실적인 삶에서의 처절한 저의 고민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의 지적이고 멋진 대학도시가 아닌 걸어서 15분이면 모든 일들을 처리 할 수 있는 이 조그마한 도시 쌩껑땅... 허물어져가고 비어진 건물들을 보면서 일상 생활에서 그렇게 생동감이 넘치는 않았습니다. 1년이면 9개월이 추운날씨, 습도가 높고, 집에 노숙자를 초대했다가 알수 없는 생명체의 공격으로 6개월이상 몸을 긇어야 했고, 이 곳 사람들은 교육을 받지 못해 투박하고 직선적이고 교양이 없다고 해야할까요... 돌이켜 보면 13년이상을 프랑스에서 살아오면서 쌩껑땅에서의 삶은 그렇게 영화롭지 (?) 않았습니다. 늘 제 머리속엔 우리는 이 곳에서 앞으로 얼마를 더 살아야 할까? 우리는 앞으로 무슨일을 하게 될까? 선교사라고 파송된 사람이 부끄럽게도 인간적인 연약함으로 이런 질문들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행히 한국에서 여러 성도님들께서 후원해주시는 후원금들과 프랑스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재정적으로는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큰 어려움없이 저희 부부 둘 다 풀타임을 드리는 생활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2년전 한국에서 가지고 있었던 재정 그대로 유지가 되면서 매달 매달 만나를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섬기는 현지 교회에서는 20년 넘게 목회하신 가정이 전혀 후원을 받지 못하고 저희 부부도 그렇습니다 . 프랑스에서 목회자는 개인적 소명으로 목회를 하나 현실적으로 생활할 수 없어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사회적 기준으로 생산성이 없는 (이익을 창출하지 않는) 일이, 직업으로 인정되지 않는데, 어떤 보수도 없는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직업이 아닌 것 같이 여겨집니다.  이런 재정적인 부분뿐 아니라 시간적인 부분도 제게는 고민이 되었습니다. 늘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급여를 받았던 생활을 오래한 저로서는 정해진 시간이 없지만, 기도회를 인도하고 아픈 사람을 방문하고 여러 전도행사등과 교회일을 하다보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되는데 다른 성도들이 그것을 알수는 없습니다. 보수가 필요해서라기 보다 일한다고 인정받고 싶어서 일자리를 찾아 보기도 하고 두리번 거려 보기도 했지만, 저는 결국 남편과 함께 같이 동역하며 일들을 해야 했기 때문에 며칠 하는 통역일을 제외하고는 계약을 쓰고 하는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모순된 상황에서 저는 선교사로 파송되고 6개월도 안되는 시간에 난소의 낭종이 생기는 병도 얻고 허무함을 달래기 위해 폭식해서 살도 많이 쪘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정의한 철학가의 말은 인간의 사회적인 인정의 기본 욕구를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곳에서 만난 성도님들과 대화를 하면 저희는 어찌보면 마음씨 좋은 교회의 봉사자인데 사회적으로는 일자리가 없는 실제적으로 이상한 형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외국인 부부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제가 생각한 저희의 정체성이 재미있습니다. ㅎㅎ



이 길은 좀 외로운 길이 맞는것 같습니다. 드디어 2년이 지나서야 조금은 마음에 평안이 생깁니다. 어차피 선교사나 목회자는 사회적으로 직업이 아에 인정되지 않는 것이서 일반 크리스천과 일반 목회자에게도 저희의 삶은 인정받기 힘든 삶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던져온 왜라는 질문이 멈추니까, 인정을 하며 평안에 이릅니다. 그리고 목회자가 부족한 프랑스에서 저희 부부는 목회를 하게 될까? 이것도 요즘 계속 하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2년동안 이곳 교회에서 느끼고 체험한 것은 사람의 생명과 영혼을 다루는 목회는 결국 쉬운일이 아니고 저희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근에 55세가 되신 어떤 아주머님께서 교회에 나오시고 마음 깊은 곳에서 주님을 만나고 계십니다. 이 분과 교제하며 제가 보는 것은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지난 시간들 동안 꾸준히 깨달은 것은 제게  이 연약함을 인정하고 그가 겪는 고통을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를 보살필 마음이 있는가입니다. 결코 영화롭지 않고 끊임없이 나와 남의 연약함을 보는 일이 목회인데, 마음 지경이 넓어지고 또 사랑의 능력을 입지 않으면 할 수 없는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2년의 쌩껑땅이라는 도시에서의 선교사의 삶을 살고 있는 저는 앞으로 저 넘어에 있는 시간들 앞에서 주님을 만났을때 주님 앞에 무엇을 가지고 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 선교사는 사역을 하는 사람인데  철저한 인간의 연약함을 덮는 성령께서 하신일들을 매번 보았는데, 그것에 저의 업적이라고 하며 주님앞에 가져 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도 합니다. 제가 누구에게 옷을 입히고 누구를 도왔고, 누구를 먹였고, 누구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 일을 위해 제 삶을 드렸습니다라고 말하기에는 저의 연약함위에 늘 일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는 없을것 같습니다. 저는 주님을 만나서 제가 뭘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앞에서 "주님께서 살라고 하신 삶을 살아내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대답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매일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제가 선교사로 삶을 살면서 사역을 많이 했고 성공했다, 또는 교회를 크게 확장했다등의 어떤 목표와 저의 행위 지향적인 삶보다 적어도 제게는 훨씬 어려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내가 죽는 십자가를 통과하고 주님이 주시는 사랑의 힘으로만 가능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오늘 저의 삶의 방향이 됩니다. 매일 주님과 동행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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