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에 대한 조그만 깨달음 ^^

지난달 세잔느 마임 콘서트 사역이 있을 즈음... 저는 정신적으로 피곤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그즈음해서 날씨는 추워지고 아침 기도회에는 70세 노인 성도님들만 거의 고정으로 나오실때였고, 저희가 케어하던 노인 성도님 2명이 계속 입원을해서 병문안을 많이 다니던 시기입니다. 평소 우울증이 심하던 한 친구를 상담하기를 벌써 1년이 넘었는데, 이 시기에는 그 친구의 "죽고싶다"는 메세지도 무거운 짐이 되고, 페이스북이나 전화 메세지로 상담요청하는 청년들이 늘어가서 그 무거움에 더이상 버티지 못할시점이에 이르렀습니다. 가끔은 힘들어서 집에 전화를 드리면 저희 아버지께서 왜이렇게 한숨을 쉬냐고 한 2달 정도 말씀하실때,  제 마음에 노인을 대하는데 큰 부담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1월말즈음 하루종일 머리가 지근거려서 약을 먹어도 안 낫기가 며칠 계속 되었을때 저는 소명이 노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청년에게 있다고 노년은 감당히 되지 않는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합리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매일 아침 노인 성도님들이 몸이 아픈것, 당신들의 완고한 주장, 갑자기 눈물을 쏟으시며 자신의 소외되었다고 하는것,  성경 한구절 읽으면서 자신은 주님이 주시는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지나치게 비관하며 우는 성도... 주님 더이상 저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저도 젊은인데 매일같이 이런 힘들다는 소리를 들어서 일까, 저 자신도 점점 비관적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것 "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겨야 한다"는 추상적인 충고나 그렇게 해야 한다는 저 자신에 스스로에 대한 압박감었습니다. 그래, 내가 사랑이 부족해서겠지... 아무리 기도로 주께 구하고 이기길 구해도... 저는 압박감에 입에는 혓바늘이 돋고 위가 쓰려서 위장약을 더 많이 먹었습니다. 노인들에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제가 듣늘 말은 우울하다, 힘들다, 죽는게 두렵다 이런 부정적인 말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런 노인 성도님들에 대해  마음에 조금은 거리를 두고 대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기까지 이르르면서 제 마음에 자괴감이 생겼습니다. 제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렇게 1년정도나 되는 시간을 하나님의 좋은 말씀과 좋은 책들을 통해서 교회는 연합가운데 주님의 영광을 드러낸다고 함께 나누었는데도, 아직도 목회자에 대한 순종이 안되고 자기 자신의 뜻이 맞다고 우기며, 특별히 이번 청년들 모임에 자신들을 제외하고 끼워주지 않는다는 삐져 있는 모습... 제가 보기에는 정말  말도 안되는 주장을 펼치는 것, 당신이 맞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설득하고 달래고 상담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도대체 왜 그럴까?" 라는 생각에 결국 저는 일주일째 또 두통을 앓고 위장약을 먹고 온몸이 쑤시는 우울증증상을 앓았습니다.  언제까지 나는 이래야 하며, 은혜를 받아야 하는 기도회때 나는 언제까지 힘들어 하는 노년 성도님들 눈치를 살펴야 하는가? 곧 날씨가 풀리면, 다양한 사람들이 아침 기도회에 올텐데 조금만 더 참자라는 마음을 먹으며, 남편에게 힘든 것을 의지하고 내려 놓은 오늘 저녁 "그럼 과연 노인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과 함께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자료들을 읽어 보았습니다.



한시간 정도 읽고 나서 2달동안 제 머리를 지근 거리게 했던 이 고민의 해결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노인은 사실 아주 격동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사람입니다. 노인의 시기에 들어서면 신체적, 육체적, 정신적인 변화를 겪으며 "끊임 없는 상실"의 시간을 겪고 있고 노인이 되면 죽기전까지 점점 장애인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화해 가야 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입니다.  결국 이 노인에 대한 자료를 통한 이해로, 지금  50년 넘게 함께 살아온 남편을 2년전 잃은 성도님, 작년에 큰 심장 수술을 두번이나 겪고 다시 살고 계시나 언제 다시 심장이 멈출지 모르는 두려움에 살고 계신 성도님, 그리고 그 옆에 배우자로 한 평생 남편의 권위에 눌려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오지 못해 말씀하실때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가 작고 말씀할 기회가 있어 말씀만 하시면 눈물을 흘리시는 성도님, 병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해서 집에 물을 엎지르고도 닦지를 못해 안절부절하다 못해 절망하신 할머님, 사실 이 분들 모두 이 어려운 변화의 시기를 겪고 계신것이라는 조그마한 이해가 생겼습니다.  이렇게 노인 바라보는 시점을 객관적으로 바꾸고 나니  저를 끊이 없이 괴롭히던 "도대체 왜, 언제까지 그럴까?" 하는 질문이 불필요하게 됨을 깨닫습니다.  그 분들은 그 자연스러운 노년의 시기를 겪고 계신것이고 그래서 그렇게 자기 중심적이고 유치하기까지 한 주장을 펼시치는 자연스러운 시기를 겪고 계신 것이라는 일반적인 이해를 통해, 그 동안 제가 겪었던 스트레스로 인한 그들에 대해 원망감과 실망감이 결국은  반대로 그들의 스트레스의 어쩌면 작은 일부를 옆에 있는 중보자로 겪었다고 생각하니 막상 그들이 겪고 있는 그 스트레스 수치는 도대체 얼마일까라는 생각마저 들게되었습니다. 드디어 제 마음속에 강박 관념으로 인핸 노인 성도님들에 대한 긍휼함이 아닌 자연스럽게 조금이나마 긍휼의 마음이 생기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노인이 되고, 저도 분명 노인이 될 것이고 제가 사랑하는 저의 부모님도 노인이 되어 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분명한건 신체적 변화를 겪는 유아기와 청소년기도 특정한 기간으로 분류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모든 분야에서 상실을 경험해야 하는 노인에 대해서 특정한 기간으로 분류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겠다는 마음을 먹습니다. 저는 아직 젊어서 경험해보지도 못했고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노년에 대한 조그마한 이해가 생기는 오늘 저녁은 제게는 특별한 주님의 은혜가 있는 날입니다.  아마 앞으로 노년 성도님을 대하는 태도와 시점에 대한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는 은혜로운 날입니다. 살려주셔서 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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