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텐트안식단

본문시작


2014.06.14 14:29

성군과 들짐승

조회 수 39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뷰어로 보기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뷰어로 보기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다음은 다니엘서에 나오는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이 꾼 꿈에 대한 다니엘의 해몽입니다.

 

왕께서 보신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먹을 것이 될 만하고 들짐승은 그 아래에 살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었나이다. 

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이는 왕이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창대하사 하늘에 닿으시며 권세는 땅 끝까지 미치심이니이다.

- 다니엘 4:20-22

 

어릴적 느부갓네살왕 또는 이스라엘을 점령한 이방 나라의 왕들은 당연히 나쁜 왕, 폭군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에 대한 이미지를 보면 어쩌면 성군이라고 불리워질 왕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는 누구든지 바라볼 수 있는 크고 아름다운 존재였고 그로 인해 만민이 양식을 얻으며 그 그늘 아래 피할 수 있었으며 그의 가지에 수많은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흔들리지 않으며 그의 영향력은 땅 끝까지라도 미칠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이런 존재가 되길 원하지 않습니까? 어쩌면 크리스천의 삶의 목적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존재로서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부족함을 채워 주며 사람들이 깃들어 쉴 수 있는 존재로 성장, 성숙하는 것이야말로 존재의 가장 선한 방향일 것입니다. 

이 세상의 정치,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이러한 지도자가 세워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그것이 알고 싶다..버전..)

 

하나님은 그런 느부갓네살 왕을 쳐서 7년동안 들짐승과 같은 상태로 낮추십니다.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 다니엘 4:25

 

7년 동안 실제로 왕은 지금으로 보자면 정신병자가 되어 지냅니다.

 

바로 그 때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

- 다니엘 4:33

 

하나님은 그에게 총명을 거두어 가셨습니다.

그 말은 느부갓네살 왕이 가진 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만물 인생의 주인이며 왕이신 하나님이 인생에게 베푸신 모든 것을 인정하고 하늘을 우러러 볼 때에라야 다시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 다니엘 4:34

 

성군 느부갓네살 왕과 들짐승과 같은 느부갓네살은 종이 한장 차이인 것 같습니다.

중심에 하나님을 왕으로, 주인으로 모시지 못한 사람은 언제라도 들짐승으로 변모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내 안에서 이와 같은 증상은 수도 없이 보아 왔습니다. 

대부분은 마음 안에 가두어 남몰래 으르렁거릴때가 많지만 이 들짐승은 언제고 불쑥 불쑥 뛰쳐나와 나와 타인을 해칩니다. 

이것을 뛰쳐 나오게 만든 부조리한 사회와 타인, 외부가 문제가 아닙니다. 적어도 문제는 그 들짐승입니다.

 

신앙의 야성과는 다른 문제라고 생가합니다. 

신앙의 야성에는 부조리한 사회와 타인, 외부를 변화시킬 하나님이 부여하신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들짐승은 사회와 타인, 외부를 파괴합니다.

야성과 들짐승이 헷갈립니다. 

야성은 좋게도 나쁘게도 사용될 수 있는 가치 중립적인 성질이지만

들짐승은 존재의 상태입니다.

 

예전에 한 청년과 차를 타고 먼거리를 운전하면서 간 적이 있는데

이 청년은 복음을 뜨겁게 경험한 지 얼마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은 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타협하는 크리스천들과 교회를 향한 의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느낀 것은 자동차 앞 유리를 부수어 깨드려 버릴것만 같은 분노였습니다.

 

들짐승으로부터 나오는 분노와

주의 다스림으로부터 나오는 야성

 

이 두가지가 공존하고 있으며 치열한 싸움이 이 사이에 있습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오늘 말씀에서와 같이 지극히 높으신 이 하나님을 우러러 보는 것, 

곧 나의 왕 나의 주되신 주님을 내 삶에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됩니다.

영향력 있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앞선 목적이 아니라 

겸손히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주인으로 인정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앞선 목적입니다.

그 목적을 따라 갈 때 나에게서 주인이 아닌 주인의 양식을 나누어 주는 선한 청지기기로서

삶을 변혁시키는 야성이 살아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 다니엘 4:36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 시편 49:12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 시편 49:20

 

IMG_4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