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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전심으로 여호와의 도를 행했던 훌륭한 왕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그렇게 쌓은 부와 영광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지키려 했던 실수를 범하는데 바로 북이스라엘 왕 아합의 딸과 전략적인 결혼을 한 것이었다.(1)

그로 말미암아 아합의 잘못된 전쟁에 마지못해 동참하게 되는데 길르앗 라못을 치러 가는 것이었다.(3)

마음이 불편한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께 물어보기를 청하고(4)

이에 아합은 400명의 선지자들을 불러 예언하게 한다.

400명의 선지자들은 하나같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 가라고 왕의 손에 붙이셨다고 예언한다.(5)

그럼에도 여전히 여호사밧의 마음은 불편하다. 왠지 찝찝하다.

 

이 외에 우리가 물을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있지 않냐고 물어 본다.(6)

이 때 아합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말한 한 인물이 ‘미가야’ 선지자이다.

그는 아합의 편에서 보면 가시 같은 존재다.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오히려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저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저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항상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 여호사밧이 가로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역대하 18:7>

http://bible.us/88/2ch.18.7.krv

 

미가야는 한결같이 아합의 죄를 지적했다. 미가야는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말하리라’라고 맹세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아합에게 한 예언은 이중 메세지이다.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저희가 왕의 손에 붙인 바 되리이다.’

여기까진 400명 선지자 예언과 다를 게 없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무섭다.

 

미가야가 가로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 좌우편에 모시고 섰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이스라엘 왕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가로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 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꾀이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 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역대하 18: 18~22>

 

결국 미가야가 본 것은 거짓의 영과 하나님의 심판 메세지였다.

 

미가야의 예언은 지금의 시대에  비추어 본다면 ‘복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참 복음은 ‘죄’에 대해 잠잠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죄’에 대해 직면시키지 않고는 ’복음’이 ‘복음’ 될 수가 없다.

‘죄’의 고발은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지 않는 정도에서 멈추지 않고 ‘죄인’, 즉 ‘존재 그 자체가 죄 덩어리인 ‘죄인’을 고발해 낸다.

이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모든 인류의 ‘죄’명을 짊어지고 대신 형벌을 받으셨다.

그 뿐 아니라 존재적 죄인인 나와 연합하여 함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인’인 내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예수님과 연합된 나도 함께 의로운 새생명으로 ‘부활’하게 된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데 없는 죄인, 내게서 나오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의 앞에서 선한 것 하나 없는 죄 뿐이라는 것, 적당히 고쳐 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이것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죄인의 ‘죽음’ 또한 받아들일 수 있다.

 

이와 같은 복음은 현대 교회에서는 ‘미가야’ 취급을 당한다.

 

화려하고 뜨거운 열정적인 찬양과 예배, 힐링, 은사, 번영, 축복을 외치는 자리에는 400명이 모일 수 있어도 그들이 모두 복음 앞에 나오지 않았을 수 있다.

모두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네 편이라고,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고 말해도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 죄와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얘기하는 ‘미가야’는 싫어한다. 아니 미워한다.

 

나는 어떠한가?

나는 내 안에 ‘미가야’의 소리를 미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네가 듣고 싶은 소리만 이야기하는 400인의 내 편을 곁에 두고 싶어 하지 않는가?

400인은 나를 합리화 해 준다.

‘네가 맞고, 너는 충분히 그럴 수 있고, 이해한다고..’ 위로해 주고 격려해 준다 할지라도 마음 속 깊은 곳 양심을 통해 말씀하시는  '미가야’를 무시하고 싫어하는 나라면 여전히 나는 아합의 자리에 앉아 있는 왕이다.

 

 

지난 주 ‘너의 목소리가 들려’ 끝 부분에 10여년을 과거의 억울함에 대한 복수로 사람을 죽여 온 살인자 ‘민준국’을 변호하는 차관우 변호사가 ‘민준국’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생각한 결과를 모든 원인을 ‘타인’에게 돌려 자신을 정당화 해 온 ‘민준국’에게 말하는 내용이다.

 

당신 눈과 당신 생각으로 세상을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수 없이 당신 눈이 되고 당신 생각이 되려고 했습니다.
당신 진짜 생각이 뭔지 알아 냈습니다!"

 

"내 진짜 생각이 뭔데요?"

 

"이 모든 시작이 당신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알았지만 당신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니깐요!
당신은 사람을 죽여 가면서 잘못되지 않았다고 우겼습니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계속 우기는 건 자기 학대입니다. 그러다가 혼자 된 것입니다!"

 

‘미가야’의 소리가 있을 때 멈춰 서서 들어야 하다.

 

그리고 ‘미가야’가 되기를 두려워 하지 말자.